코끼리의 무덤으로 가는 길
채광이 빛나는 식욕이다 / 서정 속의 나를 꺼내 햇빛에 말린다 / 전기 포트에서 물이 끓는다 / 늑대의 감각은 보다 빠르다 / 매번 절벽이다 / 피 묻힐 이빨보다 먼저 발톱 하나가 솟구쳤다 /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었다, 라는 말은 없다 / 포도주 잔을 잡으려던 내 손목을 친 것은 녀석의 앞발 / 그믐에 죽은 영혼은 어둠 속의 세계를 떠돈다고 한다 / 한 놈이 포도주 잔의 명치를 물자 떼를 지어 달려든다 / 몽고인들은 죽어가는 아이를 늑대 가죽에 돌돌 말아두면 신성한 혼이 아이를 살려준다고 믿었다 / 포도주 잔 안에는 말랑말랑한 관념이 담겨 있었다 / 잉크 냄새가 몰려왔다
달을 밀어본다 / 아직도 밤이다 / 아무도 내게 안부를 묻지 않는 동안 / 비명은 가장 솔직한 단어다 / 맥박의 두근거림이 규칙적으로 뛰었다 / 수화기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는 기계음에 가까웠다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녹는 눈처럼 흙에서 달을 뭉쳤다 / 내 눈에서는 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 / 목을 찍어낼 것이라는 생각에 손을 들어 내 목덜미를 만져본다 / 죽음을 노래하는 시인을 경계하라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그러므로 로마는 존재하지 않는 시원(始原)이다
아이가 흰 곰인형을 들고 간다 / 땅거미 지는 골목이 부풀어 오른다 / 죽음은 확실하나 인생은 모호하다 / 세탁기는 비관 자살한 노교수의 부동자세를 닮았다 / 힘겨운 숨소리가 들려온다 / 생선 가시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휘어져 있다 / 귀를 대고 있어야 간신히 몸 안의 소리가 들린다 / 돌아보면 거기쯤 상처로 핀 붉은 꽃 한 송이 맺혀 있었다 / 재빠르게 발톱의 형상이 스쳐갔다 / 떠난 사람들이 내 기억의 일부를 품고 사라져갔다 / 후드득, 포도주 잔의 신경을 건드려본다 / 동맥을 잘랐다거나 수면제를 털어 넣었다거나 하는 말들이 모두 혼(魂)으로 피워 올랐다
1
그 겨울 내 슬픈 꿈은 18세기 외투를 걸치 고 몇닢 은전과 함께 외출하였다. 목조의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랑하지 않는 여인의 흰 살결, 파고드는 쾌감을 황혼까지 생각하였다. 때로 희미한 등불을 마주 앉아 남몰래 쓴 시를 태워버리고 아, 그 겨울 내 슬픈 꿈이 방황 하던 거리,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그 숱한 만남과 이 작 은 사랑의 불꽃을 나는 가슴에 안고 걷고 있었다.
2.
밤 열 시, 시계의 태엽을 감으며 그녀의 살 속으로 한없이 하강하는 헝가리언 랍소디. 따스한 체온과 투명한 달빛이 적 시는 밤 열 시의 고독. 머리맡에 펼쳐진 십이사도의 눈꺼풀에 주기도문이 잠시 머물다 간다.
3.
날개를 준비할 것 낢, 혹은 우리의 좌절에 대한 대명사. 솟아오름으로 가라앉는 변증법적 사랑의 이중성.
4.
가로등이 부풀어오른다. 흐느적거리는 밤 공기 사이로 킬킬대는 불빛의 리듬. 안개는 선술집 문 앞에 서성이고 바람은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다. 쉬잇 설레이는 잠의 음계를 밟고 내가 바 다에 이르렀을 때, 보았다. 아득히 밀려오는 파도와 살섞으며 한 잎 두 잎 지 워지는 뱃고동 소리, 조용히 모래톱에 속삭이는 잔물결을 깨우며 한 여 인이 꽃을 낳는 것을.
5.
물결치는 시간의 베일을 헤치고 신선한 과 일처럼 다디단 그대 입술은 그대 향기로운 육체는 깊은 혼수로부터 꿈을 길 어오른다.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박수를 치며 젖은 불꽃의 옷을 벗으라 나의 하아프여
가만히 촛불을 켜고 기다리자, 누군가 휘 파람을 불며 지중해의 녹색 문을 열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피어나는 연 꽃 속에 눈뜨는 보석을 찾아.
6.
자정이 되면 그대와 함께 방문하는 러시아 의 설해림. 모닥불 옆에 앉아 우리는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선박을 그 긴 항해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는군요. 밤안개가 걷히겠지요. 바람부 는 해안 푸른 고요 속에, 목마른 자 홀로 남아 기도하는 자정의 해안 그 어둠 속에 눈은 내리고 내리고 유년의 마을 어디쯤 떠오르는 북두칠성. 지상의 모든 불빛이 고개 숙인다.
7.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모래의 날들 / 김경주
자고 일어나면 입술 위에 쌓이는 먼지처럼
달이 모래로 가득 차는 밤, 따스해 시계를 벗은 손목에 생긴 흰 줄이, 그걸 만지는 너의 손가락이, 욕조에 담긴 물은 파도가 없어서 좋아 두 발이 물속에서 천천히 떠오를 때 생기는 철렁임이 좋아 무언가를 대답해야 했을 때 욕조에 머리를 박히고 바라보던 부드럽게 가라앚아 있던 바닥의 모래들이 좋아 어디에서 흘러왔는지 모를 모래가 컨테이너 속 잠든 식구들의 얼굴에 조금씩 쌓여 갈 때 너는 그것을 저녁에 자기 발바닥을 가만히 바라보는 거미의 적요라고도 했고 문득 자기 눈을 알아보는 자들의 체온이라고도 했지 모래를 만질 때는 글씨가 흘러가는 책을 상상해 슬픈 책을 상상할 때에는 모래로 가득 찬 욕조를 생각하듯
침대에서 나비 한 마리가 사람처럼 일어나 긴 기지개를 펴고 창문으로 훌쩍 날아가는 꿈을, 저녁마다 물 밑에 숨겨 놓은 베개와 이불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사람의 문장을,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의 찬 기저귀에 천천히 스미는 오줌을, 따스해 삐란 물소를 10분 안에 먹어 치운 너의 입안이, 가라앉는 배에 매달린 사람의 손가락에서 천천히 빠져나가는 힘을, 삐라냐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을 팔꿈치가 아픈 이유라고 해도 좋을까 벨기에 맥주 축제에 간다면 세계 일주를 하고 온 쥐를 만날 수 있을가 따스해 일어나자마자 새벽에 모래차를 몰고 국도를 달리는 엄마를, 120킬로에서 90킬로로 조는 엄마의 눈꺼풀을, 상점에서 책갈피를 팔던 누이의 주머니에 살던 한 마리 캥거루를, 해는 늘 해안 도로에선 물보다 아래였고 달은 늘 해안의 모래를 트럭 뒤에 가득 실어 주고 받은 일당을 받고 온 날, 아이들에게 가장 깊은 난류로 뛰어들게 하지 대형 광고판 뒤에 살고 있는 철새들은 이제 밀물의 간조선을 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고 가져온 벙어리장갑을 강물에 버리는 페루인들이 갑자기 간밤의 꿈이 밀려와 선 채로 잠드는 안데스산맥을, 자고 일어나면 입술 위에 쌓이는 먼지로 알아보는 모래의 날들을, 따스海
- 시차의 눈을 달랜다 (2009, 민음사)
흰 염소
아기염소는 그렇지 않지만, 제법 자란 염소들은 모두 축 쳐진 눈을 하고 있다. 특히나 흰 염소들에겐 그것이 선명하게 관찰된다. 하얀 염소를 찍은 사진들에서 그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자폐아를 떠올렸다. 염소가 가진 하얀 털과 쳐진 눈이 자폐아의 세계,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중 한쪽이라도 35세 이후가 되었을 때 아이를 출산할 경우 선천적으로 자폐아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부모의 약물복용이나 감염, 불임치료가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선천적인 경우고, 후천적으로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거나 지속적인 압박이 있을 때 자폐아가 된다고 한다.
선천적인 경우에는 부모가 살아오면서 태아에게 내려보냈을 시간들과 태아가 내려받아서 제 것으로 승화시켰을 시간들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폐가 생기는 것이다. 후천적인 경우에는, 사건을 겪거나 압박을 받은 영혼은 이미 오랜 시간 후까지 (순간적으로라도)다녀왔는데 육체는 아직 그 시간에 도달하지 못해 자폐가 생기는 것이고. 김경주 시인의 단어인 ‘시차’를 빌려와서 말하자면, 선천적 자폐는 태아가 부모의 몸 속에서 시차를 견디지 못해 생기는 병이고, 후천적 자폐는 오히려 순간적으로 확 늙어버린 영혼이 아이의 육신 속에서 시차를 견디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자폐아는 서너시간의 시차가 아니라 삼십 년 사십 년의 시차를 견디고 있는 생물인 것이다. 그 시차를 견디지 못해 자꾸만 다른 시간 안으로 숨으려한다.
나는 흰 염소의 모습에서도 그 시차를 보았다. 털 색깔은 분명 순백이라 불릴 정도로 하얀 색인데, 두 눈은 축 처져서 슬퍼보였다. 살아가는 내내 지속되는 그 눈의 표정은 분명 늙은이의 것이었다. 그런데 하얗다니. 하얀 염소도 시차를 견디며 사는 생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에서 자폐아를 떠올렸나보다.
1-1. 저는 승객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 택시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승객의 과거나 미래에 관해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승객들은 오늘의 날씨나 약간의 지식을 말해줄 뿐이고, 좀더 깊은 것까지 말하는 승객도 자신의 지혜에 대해 말할 뿐이죠. 내면 깊은 곳까지 말해주는 승객은 없습니다. 과거나 미래의 일을 말한다하더라도 극히 일부만을 말할 뿐이라서 그것을 토대로 그 승객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성격이 어떨 것이다, 라고 짐작만 할 뿐이죠.
설령 승객이 자기 인생에 대해 말한다 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입니다. 제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어쨌든 이야기는 끊기기 마련이고, 승객은 돈을 지불하고 내리고, 그 이후로는 같은 승객을 만날 확률이 지극히 적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 듣기 위해서는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못하도록 빙빙 돌아야하거든요. 아니면 아예 다른 길로 새버리거나. 그래서 저는 그런 승객과 만난다하더라도 목적지에 다다르면 그냥 내려준 다음 승객이 얘기했던 개인사는 싹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 편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니까요. 제게 호기심은 불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그것이 승객의 개인사에 관련된 호기심이라면.
그럼 저 말고, 다른 택시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그러니까 승객의 개인사에 관심을 갖고 다른 길로 새면서까지 그 이야기를 들으려하는 택시에 관해. 그를 쉽게 이야기 수집택시라고 부르겠습니다. 그가 개인사를 듣고 그것을 수집하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다만 자신의 과거를 알고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닐까하고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에게는 제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들도 물론 있겠죠. 그런 것들은 그와의 대화 후에나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만 제가 짐작하는 이유에 근거해서만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것이 그의 세계에 대한 폭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아주 기본적인 가정이나 예측도 없이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그에 대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그는 이미 처벌을 받았거나 감옥에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아예 해체돼서 고철로 남았거나요. 이 이야기는 무언가에 대해 과하게 알려고 하다가 다친 것, 호기심을 참지 못해 처벌받은 것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네요. 만약 그가 처벌, 하옥, 해체 중 하나를 겪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아 있다면, 그리고 여전히 수집택시로 활동하고 있다면 이것은 어떤 신화가 되겠지요. 승객을 태우고 그 사람의 개인사를 들으며 자기 멋대로 이끄는 택시가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이야기가 신화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다음 편에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수집택시가 죽었든 신화로 남아 있든 그가 개인사를 수집하던 시절, 혹은 수집하는 현재에 관해서 얘기를 해보죠. 왜 지금 끝내냐하면, 이 얘기를 더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집택시와 상상 속에서라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눠봐야하기 때문이죠. 총총.